소설이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그리고 그 시절 책사들에 대해서 조금 더 확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보다 명확히 느끼게 해주고, 확신/신념/믿음이란 무엇이고, 그것에 따라 살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울 수 있겠구나 느끼게 해 주었다.

이성계 (1권)

변방에 있는 이성계가 개성에서 벌어지는 정치 촌극을 보면서 환멸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의 호의를 진정한 호의로 받아들임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 조선실록-박시백을 봐도 귀양가고, 국문을 받고, 죽음을 맞는 많은 장면들이 나온다. 특별한 느낌이 없어서 그냥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각 개인들에게는 얼마나 억울하거나 안타까운 장면들인가. 그리고, 상황이 말도 안되는 이유들 때문이라면...

살아가면서 불의에 동조하거나,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요구 받을 때가 분명이 있을 것이다. 나의 대응은 어때야 할까...

이성계 (2권)

드디어 위화도 회군을 한다. 역사에 대해서 별로 흥미가 없었기에 정도전/남은/이방원의 역할이나, 이성계의 고민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어렴픗이 생각해 왔던 것 보다 정도전/남은이 회군에 있어서 역할이 작게 묘사되었다.

소설에 나온 대강의 흐름은 아래와 같다.

최영과 이성계는 군권을 장악하고, 문신 세력을 제거한다. (영흥방/임견미등)

명이 철원 이북을 점령하겠다는 무리한 요청과 명/원간 전쟁 중이어서 명의 힘이 분산될 것임을 감안하여 최영은 요동을 정벌하여 대국이 되자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 이성계는 어느 정도 동조한다. 그러나 출정 시점에 실제 군대를 보고 실망하고 승산이 없다고 느낀다.

이에 "출정하는 데 용병상 네 가지 합당하지 못한 조건"을 임금과 최영에게 말한다. - 2권 p.182

그간 명나라나 원나라나, 고려를 침공한 나라에 대해서는 싸워서 이기고, 지켜내야 한다는 군인으로의 정신으로 살아온 이성계가 "소로써 대를 거역함"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 변화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싸우러 가는 현실이 부당했을 수 있어 보이며, 이것이 책사들의 의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에 동조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을 수 있어 보인다.

"냉정히 보아서 우리 군대는 연령이 고르지 못하고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중입니다." - 2권 p.183

회군 이후에도 임금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지만, 자신이 임금과 최영에게 행한 행동들로 인해 적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정도전/남은/이방원등이 움직이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형태이기는 했으나 임금과 최영을 제거하게 된다.

"왕명을 거역한 신하와 신하의 강압에 굴복한 임금, 이것은 임금일 수 없고 신하일 수 없었다. 형식은 어떻든 임금은 물러나 주어야 했다." - 2권 p.227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을 같이한 조민수는 우직한 군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최영에게 명 침공의 책임을 물어 주살하자는 남은의 의견에,
"제 나라의 중신을 남의 나라에 고자질해서 죽게 한다? 나는 못 하겠소." - 2권 p.257

이성계를 먼저 치자는 부하 장수들의 의견에,
"공연한 소리요. 지금 이성계와 내가 무력 충돌한다면 나라는 어찌 되겠소? 서로 손잡고 잘 해 가야지요." - 2권 p.259

그러나, 이성계의 책사들에게 귀양을 가게 된다.
이러한 조민수의 입장은 변화를 두려워 한 것인지, 대의를 생각한 것인지...
이러한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을런지...
그래서 "우선 순위" 혹은 "신념",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실제 최영이 요동 정벌 의견을 내고 위화도 회군이 되어 이성계/조민수가 좌/우시중이 되기까지는 약 3개월 정도가 걸렸다. 몇 백년을 이어온 정권이 무너짐에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죽이지 않구는 안 되나요?"
...
"억울해서 어떻게 죽어요?"
"죽을 때 억울하지 않은 사람도 있소?"
"그렇지만...."
"그들과는 이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소. 원수지간에는 어느 한 쪽이 철저히 이기고 한 쪽은 철저히 져야 하오." - 2권 p.350

변안열 장군은 사태가 벌어지고, 조정의 부름에 나오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들과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죽임을 당했다.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기 위해, 그냥 머무르는 것조차 목숨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죽은 자는 아주 쓸모 있는 증인이었다. 눈에 거슬리는 자는 죽은 김저와 공모했다거나, 김저가 그렇게 진술했다고 하면 더 변명할 도리가 없었다." - 2권 p360

변화의 시기에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흥국사 회의에서 정도전이 임금을 몰아내자는 의견을 낼때 아무도 말을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이 반역의 무리들을 몰아내고 왕실의 혈통을 바로잡아야 하게소."
그는 잠시 그쳤다가 말을 이었다.
"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론이 있는 분은 앞으로 나와 주시오."
그는 말을 끊고 다시 장내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뚫어지게 보았다. 장내의 공기는 무어라고 한마디만 하여도 당장 칼탕을 쳐서 짓뭉개 버릴 기세였다. 아무도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고 기침소리 하나 없는 살벌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 2권 p.341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목숨을 내 놓고 정견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자신을 그렇다고 해도, 가족까지 담보로 해서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변하거나 상황이 변하지는 않을 텐데, 의미가 있을가? 새삼 성경을 품에 안고 목숨을 내 놓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숨을 내 놓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게 된다.

진정 이러한 시점이 개인이 철학을 가지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판단하게 하는 것 같다.

이성계 (3권)

드디어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고, 한성으로 서울을 옮기고, 경복궁을 짓고, 왕자의 난으로 7년만에 상왕이 되었다.
왕위에 오른 이후의 태도를 보면, 소설 속에서 권력을 본의아니게 갖게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잘못되었다 싶게 왕으로써의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세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 들고 못 드는 것이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 p.86
"문제는 옳으냐 그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이냐 동지냐에 있습니다." - p.115

대부분이 이럴지 모르겠다. 옳고 그름이 양심을 건드려 어느 정도의 범위를 늘려 줄 수는 있지만, 결국 판단의 기준은 "그들의 눈에 들고 못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라는 것도 남은, 정도전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일시적이고 변할 뿐이다.

"조정에 남은 자기도 입이 무겁고 행동이 무겁고 참지 못할 것을 참아 왔기에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했지, 그렇지 않았던들 모사들의 그물에 걸려 지금쯤은 저승에 있을 것이었다." - p.124

정몽주의 생각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왔지만, 이성계가 즉위하는 분위기에서

"자신도 고려 왕조와 마찬가지로 죽은 시체요, 값없는 목숨이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듣지 못할 것을 들으면서 세월의 흐름 속을 떠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 p.124

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한 것 같다.

"타협이란 결국 해결의 천연에 불과하고 무용의 희생을 의미할 뿐이었다.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의 선은 분명해야 했다. 적은 철저한 원수요, 원수를 대접하는 길은 철두철미 타도, 유린이 있을 따름이요, 공존이란 어리석은 자의 백일몽이었다." - p.152

고려 왕족 '왕'씨를 대하는 이성계의 생각이다. 장수로써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옹졸해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옳은 길이 반드시 착한 길은 아닙니다." - p.190

퉁두란이 이성계 즉위시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이성계에게 한 말이다.

"권력의 세계는 승리와 패배, 적과 동지의 세계요, 관용과 사랑,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일 수는 없었다." - p.344

"왕자의 난" 이후의 상항을 묘사한 내용이다.

상왕이 된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고, 쓸쓸히 한양에서 개경으로 쫒겨나 딸이 출가하는 장면을 보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되었다.



추가(16/2/25)


p.93

"침공은 물론 막아야지요. 그러나 적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동병한다는 것은 경솔한 일입니다."

염흥방이 홍징을 반박했다. 듣고만 있던 최영의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폐일언하고 우리 땅에 쳐들어온 자는 적이요, 반드시 적은 몰아내야 하오. 그들의 의도를 알면 나쁠 것이야 없지요. 허나 누가 그들의 의도를 알겠소?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그들의 의도요, 그들 자신도 이를 모를 것이오. 우리가 할 일은 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리저리 추측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을 정확히 판단하는데 있소."


대부분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에 대처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의도를 가진 사람도 정확히 자신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말을 하면서, 논리를 피력하면서, 설득을 하려 하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의도를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결론적으로 생각 없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137

"장군, 방어도 중요하지마는 공격을 전제로 하지 않는 방어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이 필요한 것일까? 공격을 피를 부르고, 갈등을 부르고... 갈등을 피하고 싶다면 공격하지 말것이며, 공격하지 않는다면 승리는 없는 것인가?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살아 남기 위해서도?


p.170

사색이 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를 바람에 나부끼면서 뒷짐을 묶인 임견미는 탄식했다.

"내 잔인에 철저하지 못해 오늘 이 변을 당하는구나."


다른 사람들이 이성계를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 임견미가 인정을 배풀었는데, 결국 이성계에게 당하게 되는 시점에 임견민의 탄식이다. 승리하고자 한다면 잔인할 수 있을때 해야 한다는 것인가?


p.187

중대한 원정에 통수의 기본을 무시하는 처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십 년전 두 번 요동을 정벌하여 두 번 다 이기고도 두 번 다 실패하고 돌아왔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도통사 이인임이 멀리 떨어진 후방 안주에 정좌함으로써 현지에 책임 있는 최고사령관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제한된 권한밖에 없는 동급의 사령관들이 멋대로 사태를 판단하고 그중 한 사람이 강력히 우기면 오합지중같이 그를 따르게 마련이었다. 최고 지도부가 현지군의 변덕에 좌우되는 있ㄴ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반드시 자기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p.190

백만 대군을 통솔 지휘하는 것도 결국 최고 지휘자 한 사람에 달려 있다고 했다.


p.206

"이번 회군은 어명을 거역하고...."

조인옥이 말을 맺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이성계는 크게 호통을 쳤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언제 어명을 거역했소? 우리가 회군하는 목적은 어전에 나아가 직접 이 어려운 사정을 아뢰는 데 있는 것이오."

"그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오."

조인옥이 더 말하지 못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성계는 소리를 높였다.

"회군의 대의는 신하로서 주상 전하 앞에 더욱 충성하자 함이요, 딴뜻은 하나도 없소. 회군하는 우리들 앞에 적이 있다면 오직 이 충성을 가로 막는 자들이 있을 뿐이오. 만에 하나라도 여기 오해가 있어서는 안되겠소. 휘하 장병들에게 철저히 주지시키도록 하오."


이성계도 이러한 논리가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대의나 명분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 만들어낸 논리와 대의명분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자신조차도 만들어낸 논리에 취해서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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